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은 부산 서구 아미동 산19번지 일대 산비탈에 자리 잡은 독특한 역사적 주거지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서며 형성된 이곳의 탄생 배경과 현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마을이 만들어진 계기: 6·25 전쟁과 피란민 유입

  • 피란 수도 부산의 공간 부족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전국의 수많은 피란민이 임시 수도였던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인구는 순식간에 3배 이상 폭증했고, 영도나 부산역, 자갈치 일대 평지는 피란민 수용 한계를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 산비탈 한계선까지 밀려난 삶의 터전갈 곳이 없던 피란민들은 부산 시내를 벗어나 용두산, 보수동, 아미동 등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올라가 판잣집(하꼬방)을 짓고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2. 무덤과 비석 위에 집을 지은 이유

  •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 ‘아미초(谷町) 묘지’의 방치원래 아미동 일대는 1906년경 일제가 조성한 대규모 일본인 전용 화장장과 납골묘역(공동묘지)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급히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유골과 묘비석, 석축만 남겨진 채 관리 주체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 산비탈에서 유일하게 평평했던 ‘묘지 기단’가파른 산비탈에서 판잣집을 세우려면 땅을 고르고 평평한 바닥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묘역은 화강암 석축으로 단단하게 축대를 쌓아 만든 계단식 평지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피란민들에게 묘지의 콘크리트 기단은 집을 곧바로 얹을 수 있는 최적의 기초 바닥이었습니다.
  • 생존을 위한 건축 자재로서의 비석과 상석목재, 벽돌, 시멘트가 극도로 부족했던 시절, 주변에 널려 있던 화강암 비석, 상석, 묘 테두리 돌은 훌륭한 건축 자재였습니다. 피란민들은 당장 얼어 죽거나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비석을 주춧돌, 계단 디딤돌, 담장 축대, 부엌 가스대 받침으로 활용해 집을 지었습니다.

3. 폐가가 늘어나고 방치되고 있는 이유

  • 원주민의 고령화와 인구 유출피란 1세대 주민들이 고령으로 별세하거나 요양병원 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집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2~3세대 자녀들은 일자리와 편의시설이 있는 평지나 신도시로 이주하여 마을의 공동화가 심화되었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wlsdjr63/224056168577

주소

부산 서구 아미로 49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